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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3 미남이시네요, 기분 좋은 배신감이 느껴진다 (1)

자그마치 200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대작 드라마 <아이리스>에게 시청률로는 밀리지만 <미남이시네요>는 올해 드라마 중 가장 뽀송뽀송하고 유쾌한 드라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조의 여왕> 정도가 완성도 높고 유쾌하고 빵빵 터지는 드라마였지만, 일단 배경이 힘겨운 노동과 자리 싸움의 현장인 회사였고 주인공들도 삼십대였지요. 그런데 <미남이시네요>는 아이돌 밴드가 등장하는 만큼 배경과 주인공 나이대가 달라서 상큼상큼상큼합니다(어쨌든 저도 <내조의 여왕> 왕 팬입니다!).  

드라마 시작 전엔 아이돌 밴드에 남장여자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라기에 '빤하구먼~! 쯧쯧' 하고 생각했습니다. 강마에가 오케스트라 단원을 '똥 덩 어 리'라 부를 때의 표정으로 방송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겠어. 아이돌 가수 좋아하는 아이들에겐 먹히겠네.' 하고요. 그런데 <아이리스>보다 한 주 먼저 시작했기에 일단 한번 볼까 하는 심정으로 첫 방송을 보자마자 바로 '낚였'습니다. 아니 뭐 이런 신선하고 재미있는 드라마가 다 있나 하면서요. 


기분 좋은 배신감이 느껴지는 드라마

이 드라마가 좋고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빤하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아이돌 그룹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남장여자 이야기'가 빤하지 않다니 놀랍죠? 어차피 드라마들은 1, 2회만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세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집니다.  이 드라마도 대충 어떤 방향으로 갈지 보이죠.

여기에서 '빤하지 않다'는 건 상황들이 신선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4회 마지막 수영장 장면을 볼까요? 고미남이 물 속에서 오래 버티느라 기진맥진해 있었고 황태경이 구하러 들어왔습니다. 여기까진 드라마에서 수천 번 나왔던 장면입니다. 시청자는 예상하죠. '아, 또 남자가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주는 스토리네. 이러다 인공호흡이다 뭐다 하면서 뽀뽀도 할 수 있겠군.'

그런데 5회 첫 장면에서는 전혀 다르게 전개가 되었습니다. 황태경의 인기척으로 고미남이 정신이 번쩍 들더니, 황태경의 머리를 박차고 스스로 밖으로 나간 거지요. 오히려 황태경은 고미남의 하이킥에 맞아서 기절했고요. 

이런 식으로 <미남이시네요>는 순간순간 '배신감'이 느껴집니다. 홍 자매 드라마는 처음 보는데, 이런 '배신감 주는 장면'에서 그들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다음 회에서는 또 어떤 배신감을 느낄지 기대도 되고요.

좋은 대본과 재능 있는 연기자가 만났을 때

스토리 전개와 대사들도 착착 감기는데, 만약 연기가 안 되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만약 장근석-박신혜 씨가 아니었다면 드라마가 이 정도로 설득력을 얻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좋은 대본과 좋은 연기자가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할까요. 

장근석 씨는 그동안 '허세' 이미지 때문에 재능이 과소평가되는 배우였습니다. 일단 그는 상당히 노력하는 배우고, 욕심이 많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신비주의니 뭐니 해서 광고만 줄창 찍어대는 게 아니라 정말 꾸준히 작품활동을 합니다. 비슷비슷한 역할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애써 찾아서 연기하는 중이죠.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장근석 씨는 이례적일 정도로 열심히 하는 꾸준한 배우입니다. 노래도 잘하고, 스타일링에 대해서도 감탄이 나옵니다. 그는 상당히 독특한 스타일도 잘 소화하는 얼굴과 몸을 가졌습니다. 본인이 그런 것에 도전하는 걸 즐기기도 하고요. 

박신혜 씨는 그동안 나이와 이미지에 잘 맞는 작품을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드디어 이 드라마를 만났습니다. 고미남 캐릭터가 이만큼 순수하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건 박신혜 씨의 연기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노래도 잘하죠. 고미남으로 남장 했을 때 좀 더 굵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 아쉬운데, 그럼에도 그냥 다 이해가 될 정도로 순수한 매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습니다.

'짝사랑남'을 맡고 있는 정용화 씨나 실제 아이돌 그룹 가수인 이홍기 씨도 본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습니다. 배우들 연기 때문에 속 썩을 일이 없다니, 이십대 초반 배우가 주인공인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이기도 하지요.

작가님, 이것만은 제발!

그래도 걱정되는 게 없는 건 아닙니다. 구리구리한 출생의 비밀 코드는 제발 좀 없길 바라는데, 역시나 이 드라마도 그 장치를 사용하는군요. 홍 자매 극본답게 그 부분도 무리가 덜 가게 다루어주길 간절히 간절히 빌어봅니다.

또 하나, 언제나 도움을 받기만 하는 여자들. 고미남이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민폐 캐릭터였다지만, 6회에서는 유헤이마저 도움 받는 여성 캐릭터에 합류했습니다. 그동안 유헤이 캐릭터는 '가식적인 국민요정'으로서 황태경과 티격태격하는 싸움도 할 수 있는 당찬 캐릭터였는데, 황태경에게 극적인 도움을 한 번 받더니만 딱 반하고 말더랍니다. 쩝. 

 

* 참, 강신우 캐릭터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네요. 아시아 최고의 아이돌 그룹 세 멤버가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하는 설정, 이건 드라마니깐 괜찮습니다. 어차피 현실성에 목숨 거는 드라마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강신우가 고미남을 좋아하게 된 과정은 너무 허술하게 처리되었고, 고미남을 좋아하는 현재도 너무 소극적입니다. 이 캐릭터가 가장 설득력이 덜하단 뜻입니다. 황태경-고미남의 감정선은 세심하게 처리되어 잘 이해가 되는 반면, 강신우의 감정은 그저 고미남을 좋아한다는 것밖에 모르겠거든요. 작가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