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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7 '그바보' 언제까지 황정민에게 기댈래?

'연기의 달인' 황정민 씨와 간만에 드라마에 출연하여 화제를 모은 김아중 씨가 이끌어 나가는 <그저 바라보다가>는 황정민 씨의 연기와 막장스럽지 않은 소재 덕분에 방영을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호평이 흘러나왔습니다. 비록 톱스타와 평범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이전에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차용된 소재지만,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 같은 노래라도 어떤 가수가 부르느냐, 누가 편곡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유쾌 상쾌한 시트콤을 써 온 작가들과 황정민/김아중이 만나 어떤 맛을 낼지, 기대하는 마음이 무척 컸습니다.

'갈등의 블랙홀' 구동백은 '재미의 블랙홀'

1, 2회 때에는 요즘 온통 악다구니를 치는 드라마 캐릭터들 속에서 항상 조용조용한 구동백 캐릭터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황정민 씨의 연기가 캐릭터를 잘 살린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지요. 다만 이렇게 단면적인 캐릭터로는 드라마를 끝까지 이끌어가기 힘들 텐데 하는 우려가 벌써 들기 시작했습니다. 1, 2회까지는 봐 준다고 해도 3회에서도, 4회에서도, 앞으로도 쭈욱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주변사람들의 모든 투정이나 짜증, 모함, 오해 등을 다 받아주면서 무조건 '다 이해해~' 한다면 극이 과연 재미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것은 (다시 말해 가장 큰 흥밋거리는)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 고난인데, 구동백은 고난은 겪을지라도 그와 갈등관계로 엮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구동백 앞에만 가져가면 갈등도 갈등이 아니니까요.

3회에서는 그런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동백과 사귀는 것이 가짜임을 들킬 위기에 처하자 일본으로 여행을 가야겠다, 강모 아버지의 강권 때문에 동백과 결혼해야겠다는 엄청난 결정들을 혼자서 내리고 동백에게 '통보'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기자에게 들킨 동백의 책임이라며 지수는 짜증을 제대로 부리지요.

이때도 동백의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래도 조용, 저래도 포용할 뿐입니다. 계속해서 동백이 '갈등의 블랙홀' 역할을 한다면 드라마의 모든 갈등들이 힘이 없어질 것입니다. 드라마 초반엔 신선한 흥미를 유발했던 구동백 캐릭터가 드라마의 재미를 잡아먹는 '재미의 블랙홀'이 될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도덕 교과서는 재미가 없다

사실 1회부터 '착한' 구동백에 대해 미세한 균열감은 느껴졌습니다. '아니, 갑자기 차 운전석에 앉아 달라는 부탁을 도대체 누가 들어줘? 119에 신고하는 게 정상 아니야? 잘못 앉았다가 법적인 책임이라도 물으면 어떻게 해?' 하고 스스로 되물었지만, 구동백이니까 이해했습니다. 갑자기 누가 절박하게 부탁하면 얼떨결에 그럴 수 있으니까요.

2회를 보면서도 '남한테 거짓말 한번 안 하고 살았다는 사람이 온 국민을 속이는 거짓 약혼을 저렇게 쉽게 한단 말이야? 그러고도 뭔가 괴로워하거나 갈등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네?'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지금 당장 나한테 강동원이 계약약혼 하자고 하면 어떻게 거절하겠어?'라고 스스로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동백이 지수를 도와준 대가로 돈이나 비싼 차 대신 친필 사인이나 직장 체육대회 참석을 부탁하는 에피소드 류의 것들이 매회마다 반복되면서 극을 지루하고 뻔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극이 언제까지나 '톱스타 한지수는 이러저러해서 구동백에게 짜증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구동백의 행동을 보고 한지수도 마음을 다시 착하게 돌이켰습니다'로 전개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안 그래도 이 드라마는 무척 빤한 전개가 예상되는 드라마입니다. 계약 결혼을 하면서 여자는 남자의 따뜻한 면,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빠지게 되지만, 위기가 있을 테고 결국은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이런 그림이 대충 그려집니다.

그런데도 시청자의 눈을 끌려면 과정이 상큼하고 통통 튀는 에피소드로 채워져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한지수가 엇나가고 구동백이 (시청자에게는 예상 가능하지만 한지수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착한 행동을 보고 감격하고... 언제까지 이런 패턴만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도덕 교과서도 황정민이 읽어 주니 재미있긴 합니다만, 아무리 황정민이라도 언제까지나 도덕 교과서가 재미있게 다가오진 않을 것입니다.

'그 바보'에는 바보들만 나온다?


모든 톱스타가 <온에어>의 '오승아' 같지는 않겠지만 한지수는 포스가 심하게 부족합니다. 톱스타라고 물론 사랑을 모르겠습니까? 연예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행동하는 데에 제약도 많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별로 없다 하더라도 이건 뭐, 지나칠 정도로 수동적입니다. 연인인 강모의 아버지를 대할 때에도 한 사람의 성숙한 사회인으로서 대화하는 게 아니라, 무슨 60년대 <미워도 다시 한 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강모의 아버지 김 의원뿐만 아니라 매니저, 강모의 말까지 순종하려니, 지수는 남의 뜻대로 움직이는 존재일 뿐 자기만의 생각과 의지는 도대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극에서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지수의 동생과 동백의 동생, 김 의원밖에 없는 듯)

강모 또한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를 받더라도 "아버지!" 하고 한번 애절하게 소리 지른 다음에 수동적으로 그 요구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구동백이야 워낙 지수와 매니저가 하자는 대로 하는 중이고요(지수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하는 '착한 행동'을 빼고는).

비상식적이고 자극적인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이런 '착하고 따뜻한' 드라마의 등장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흥미 포인트가 구동백의 순박함에만 맞춰서는 끝까지 흥미롭기 힘들 것입니다. 굳이 한지수를 톱스타라는 설정으로 했다면 톱스타에 걸맞은 캐릭터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 줌으로써 구동백과 대비도 시키고, 아울러 시청자에게 눈요깃거리도 제공해야 합니다. 황정민 씨의 연기야 정말 멋지지만, 구동백의 순수함과 엉뚱함이 한 축, 한지수의 톱스타스러운 포스가 한 축을 이루어 나란히 걸어가야 드라마가 제대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한지수라는 축이 삐걱거린다면 구동백의 순수함이 주는 재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