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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0 카인과 아벨, 여자 주인공은 왜 나올까?


카인과 아벨, 여자 주인공은 하는 일이 없다


<카인과 아벨>의 주인공은 '카인'과 '아벨'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요? 그런데 카인도 아벨도 남자이다 보니 남자들이 극을 이끌어 가는 중입니다. 중심적인 사건은 대부분 카인이 일으키고(초반에 선우가 완벽한 '카인' 모드로 들어가기까지는 카인의 엄마가 잠깐 등장하기도 했지만) 아벨이 처절하게 당하다가, 이제 기억을 서서히 찾아가며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아벨이 나서서 복수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 복수극의 과정에서 카인과 아벨이 서로 대립하며 머리 싸움을 벌이는 중이지요.

그러다 보니 여자 주인공 두 명은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분위기입니다. 김서연을 먼저 볼까요? 초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우는 모습, 선우에게 밥 차려 주는 모습, 초인과 선우에게 사랑받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전형적인 첫사랑의 모습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지요.

어제도 초인과 선우에게 일어난 사건을 짐작한 마지막 장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리액션만 보이다 끝나 버렸습니다. 물론 극의 후반부에 나온 장면이라 다음 부에서 서연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드라마는 서연이 '초인과 선우 사이의 사건'을 알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하는 것보다는 '서연이 알게 되었을 때 초인과 선우의 반응'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만약 서연의 혼란과 심경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드라마도 서연이 뛰쳐 나가는 데에서 끝났을 텐데,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서연이 뛰쳐 나간 후 선우와 초인이 대립하며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데에서 끝났지요. 마지막 장면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장면임을 감안한다면 이 드라마는 서연의 리액션보다, 서연이 알게 된 사건 또한 선우와 초인의 대립을 위한 갈등이 더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영지는 어떨까요? 영지는 서연보다는 좀 더 존재감이 있습니다. 초반에는 나쁜 사람들의 꾐에 빠져서 본의 아니게 초인 납치 사건에 개입하기도 했고, 중반에는 한국에 다시 돌아온 초인을 의심하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오강호'라고 이야기해 주고, 함께 살면서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도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후로 영지는 초인에게 반한 여자, 초인이 보호해 줘야 하는 여자 역할만 하고 있을 뿐 극의 전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연도, 영지도 둘 다 주인공의 사랑을 받는다, 주인공을 사랑한다, 이 두 가지 역할 빼고는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지요.

복수극의 단골대사, '그녀만은 몰라야 해.'


복수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가 이렇게 다루어지는 경우는 그동안 종종 있었습니다. 남성 주인공들이 대부분의 사건을 만들고 전개시키고 갈등하는 가운데 여자는 그 사이에 끼여 아파하는 것이죠. 남자는 그 여자를 보며 복수심에 잔인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으로 한줄기 눈물을 흘리거나, 여자의 존재가 복수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 대부분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그녀만은 몰라야 해' 이것이 복수 드라마의 단골 대사이지요.

명품 중의 명품 복수 드라마인 <부활>에서도 그랬습니다. (그 드라마에도 한지민 씨가 나왔군요) 엄태웅이 맡은 서하은은(유강혁이자 유신혁이기도 했던) 아버지와 동생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계략을 꾸며 복수를 꿈꾸는데, 어머니와 여동생 신영, 연인인 서은하까지 이 셋은 나이와 얼굴만 다를 뿐 '주인공이 그들에게만은 모든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이런 복수극에서는 여성이 극에 개입할 여지가 없이, 그냥 그림처럼 존재만 할 뿐입니다.

여성의 복수극은 남자가 원인, 남성의 복수극은 핏줄이 원인

그럼 여성이 주인공인 복수극은 어떨까요? 현재 방송 중인 <아내의 유혹>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여성 복수 드라마의 전설 <청춘의 덫> 등을 보면, 확실히 그녀들은 극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드라마에서는 남자가 오히려 존재감이 훨씬 덜하지요.

하지만 복수의 이유를 살펴보면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 복수극은 다들 원인이 '남자'입니다. 내가 널 이렇게 사랑했는데 넌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부숴 버릴 거야! 이것이 여성 복수극의 기본 포인트인 셈입니다.

남자가 주인공인 복수극 중에서 '내가 널 이렇게 사랑했는데 넌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부숴 버릴 거야!'라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배신 당하고 (때로는 아이까지 떠맡게 되어) 그녀를 찾아가 복수하는 내용이 있었던가요? 제가 우리나라 드라마를 전부 다 본 것이 아니니 '전혀 없다'라고 대답은 못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의 복수극은 대부분 '핏줄' 문제입니다. 내 부모님에게, 내 가족에게 해를 입혔을 때에 착하던 남자가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여 온갖 위기를 자기 힘으로 헤쳐 나가는 것이지요.

<카인과 아벨>은 재미있습니다. 극 자체의 짜임새나 넘쳐나는 PPL 등 아쉬운 점은 있어도 소지섭 씨의 캐릭터만으로도 어제 16부는 아주 시청자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야밤에 초인이가 구내식당에서 영지에게 갑작스럽게 뽀뽀를 하는 장면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복수극의 소재가 좀 더 다양해지길, 남성이 이끌어가는 복수극 안에서 여성을 그저 '예쁜 그림' 취급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길, 여성도 '남자의 배신' 이외에 다른 이유로 복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 앞으로는 더 치밀하고 다양한 복수극이 등장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