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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5 <결못남>과 한국사회의 결혼강박증 (3)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는 흔히 말하는 막장 코드(불륜, 복수, 배신, 무조건 악역 등)가 없다. 자연히 부담을 덜어놓고 욕을 안 하면서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막장코드 대신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것', 심지어 '아이는 꼭 낳아야 하는 것'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결국 이 드라마는 결혼과 출산에 관한 캠페인처럼 끝나고 말았다.


시작은 나름대로 신선했다. 일본 드라마를 들여온 것이라 지진희 씨의 연기가 일본 배우와 비교가 되기도 했지만, 몇 회 지나며 지진희 씨만의 표정 연기와 몸짓 연기가 몸에 배기 시작하면서 재미있는 캐릭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동안도 우리 드라마에서 '결혼 하는 남자'는 꾸준히 다뤄왔다. 그들은 대부분 바람둥이, 나쁜 남자였다. 결혼하면 여자를 더 많이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결혼을 피하는 것이다. 이외엔 결혼하기가 굳이 굳이 굳이 싫다는 캐릭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조재희 캐릭터는 이런 빤함에서 벗어나 있었다.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으나, 여자를 자유롭게 만나고 싶은 '이기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기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삶의 질을 위해, 결혼하면 너무도 달라질 자신의 삶을 상상도 할 수 없기에, 그 모든 책임을 지고 짓눌려 살고 싶지 않기에, 무엇보다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에 결혼을 마다한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특별하고 신선한 점이었다. 생각해 보면 결혼하기 싫은 이유는 결혼하고 싶은 이유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만큼이나 아이를 낳기 싫은(혹은 낳을 수 없는) 이유도 다양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드라마만 보면 결혼하지 않는 자에겐 미래도 없는 것 같다. 결혼만이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지름길(이거나 적어도 필수요소)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 결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숱하게 다루었으니, 이 드라마는 왜 결혼하고 싶지 않은지를 좀 더 설득력 있게 드러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 모든 남녀가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자녀 교육 때문에 고민하고, 조그만 아파트라도 장만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일까?

나이 사십의 미혼 남녀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삼십대 후반, 사십대 초반의 리얼한 일상과 고민을 보여 주었더라면 얼마나 신선했을까 말이다.

마흔이 되어가는 이들의 내면적 갈등과 고뇌, 일상을 제대로 담지 못했기에, 이 드라마는 나이대만 이십대에서 서른아홉, 마흔으로 옮겼지, 그저 '까칠한 남자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만나더니 변했다'라는 공식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빤한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마지막 편의 '캠페인스러움'은 극단에 달했다. 장문정을 만나 난생처음 외로움을 느낀 조재희는 40년의 가치관을 한순간에 버리고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나 아이는 한 번 낳아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문정은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조재희와 두 말 섞지않고 헤어져 버린다. 어렵게 찾은 '평생의 사랑'이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 하는 것으로 역시 한순간에 끝나 버린다.

그리고 조재희는 장문정이 사라진 뒤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고(!) 수소문하여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와 함께 있기 위하여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겠다는 거다. 거기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대사.

"왜 아이를 낳고 싶어해요?"
"아이는 우리의 미래잖아요. 아이를 안 낳는 건 이기적인 거죠."

그 대사를 듣는데 헛웃음만 나왔다. 우리 사회의 결혼 강박주의, 출산 강박주의는 언제까지나 지속될까? 88만원 세대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겨운데, 교과부는 친일 반민족행위 청산도 제대로 되지 않은 오늘의 현실을 개탄하기는커녕 '좌편향 교과서'를 개정하겠다고 하는데, 온 나라 학생에게 한 날 한시에 똑같은 문제를 풀게 하고는 전국 1등부터 전국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데,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에게는 점점 기회가 박탈되는데,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이 언제까지나 '개인의 이기심'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일까?

결혼과 출산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개개인의 삶과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나 한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결혼하고 출산을 해야 한단 말인가? 혹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결혼하고 출산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견디지 못하는 '오지랖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정녕 선택의 자유는 먼 나라 이야기이기에 <결못남>은 결국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캠페인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