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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과 아벨, 여자 주인공은 하는 일이 없다


<카인과 아벨>의 주인공은 '카인'과 '아벨'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요? 그런데 카인도 아벨도 남자이다 보니 남자들이 극을 이끌어 가는 중입니다. 중심적인 사건은 대부분 카인이 일으키고(초반에 선우가 완벽한 '카인' 모드로 들어가기까지는 카인의 엄마가 잠깐 등장하기도 했지만) 아벨이 처절하게 당하다가, 이제 기억을 서서히 찾아가며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아벨이 나서서 복수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 복수극의 과정에서 카인과 아벨이 서로 대립하며 머리 싸움을 벌이는 중이지요.

그러다 보니 여자 주인공 두 명은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분위기입니다. 김서연을 먼저 볼까요? 초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우는 모습, 선우에게 밥 차려 주는 모습, 초인과 선우에게 사랑받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전형적인 첫사랑의 모습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지요.

어제도 초인과 선우에게 일어난 사건을 짐작한 마지막 장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리액션만 보이다 끝나 버렸습니다. 물론 극의 후반부에 나온 장면이라 다음 부에서 서연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드라마는 서연이 '초인과 선우 사이의 사건'을 알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하는 것보다는 '서연이 알게 되었을 때 초인과 선우의 반응'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만약 서연의 혼란과 심경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드라마도 서연이 뛰쳐 나가는 데에서 끝났을 텐데,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서연이 뛰쳐 나간 후 선우와 초인이 대립하며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데에서 끝났지요. 마지막 장면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장면임을 감안한다면 이 드라마는 서연의 리액션보다, 서연이 알게 된 사건 또한 선우와 초인의 대립을 위한 갈등이 더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영지는 어떨까요? 영지는 서연보다는 좀 더 존재감이 있습니다. 초반에는 나쁜 사람들의 꾐에 빠져서 본의 아니게 초인 납치 사건에 개입하기도 했고, 중반에는 한국에 다시 돌아온 초인을 의심하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오강호'라고 이야기해 주고, 함께 살면서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도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후로 영지는 초인에게 반한 여자, 초인이 보호해 줘야 하는 여자 역할만 하고 있을 뿐 극의 전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연도, 영지도 둘 다 주인공의 사랑을 받는다, 주인공을 사랑한다, 이 두 가지 역할 빼고는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지요.

복수극의 단골대사, '그녀만은 몰라야 해.'


복수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가 이렇게 다루어지는 경우는 그동안 종종 있었습니다. 남성 주인공들이 대부분의 사건을 만들고 전개시키고 갈등하는 가운데 여자는 그 사이에 끼여 아파하는 것이죠. 남자는 그 여자를 보며 복수심에 잔인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으로 한줄기 눈물을 흘리거나, 여자의 존재가 복수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 대부분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그녀만은 몰라야 해' 이것이 복수 드라마의 단골 대사이지요.

명품 중의 명품 복수 드라마인 <부활>에서도 그랬습니다. (그 드라마에도 한지민 씨가 나왔군요) 엄태웅이 맡은 서하은은(유강혁이자 유신혁이기도 했던) 아버지와 동생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계략을 꾸며 복수를 꿈꾸는데, 어머니와 여동생 신영, 연인인 서은하까지 이 셋은 나이와 얼굴만 다를 뿐 '주인공이 그들에게만은 모든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이런 복수극에서는 여성이 극에 개입할 여지가 없이, 그냥 그림처럼 존재만 할 뿐입니다.

여성의 복수극은 남자가 원인, 남성의 복수극은 핏줄이 원인

그럼 여성이 주인공인 복수극은 어떨까요? 현재 방송 중인 <아내의 유혹>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여성 복수 드라마의 전설 <청춘의 덫> 등을 보면, 확실히 그녀들은 극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드라마에서는 남자가 오히려 존재감이 훨씬 덜하지요.

하지만 복수의 이유를 살펴보면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 복수극은 다들 원인이 '남자'입니다. 내가 널 이렇게 사랑했는데 넌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부숴 버릴 거야! 이것이 여성 복수극의 기본 포인트인 셈입니다.

남자가 주인공인 복수극 중에서 '내가 널 이렇게 사랑했는데 넌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부숴 버릴 거야!'라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배신 당하고 (때로는 아이까지 떠맡게 되어) 그녀를 찾아가 복수하는 내용이 있었던가요? 제가 우리나라 드라마를 전부 다 본 것이 아니니 '전혀 없다'라고 대답은 못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의 복수극은 대부분 '핏줄' 문제입니다. 내 부모님에게, 내 가족에게 해를 입혔을 때에 착하던 남자가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여 온갖 위기를 자기 힘으로 헤쳐 나가는 것이지요.

<카인과 아벨>은 재미있습니다. 극 자체의 짜임새나 넘쳐나는 PPL 등 아쉬운 점은 있어도 소지섭 씨의 캐릭터만으로도 어제 16부는 아주 시청자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야밤에 초인이가 구내식당에서 영지에게 갑작스럽게 뽀뽀를 하는 장면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복수극의 소재가 좀 더 다양해지길, 남성이 이끌어가는 복수극 안에서 여성을 그저 '예쁜 그림' 취급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길, 여성도 '남자의 배신' 이외에 다른 이유로 복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 앞으로는 더 치밀하고 다양한 복수극이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장서희, 무릎팍 도사를 유혹하다

<무릎팍 도사>에 나온 장서희 씨가 '무릎팍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이건 장서희 씨 개인이 매력 있고 프로그램을 솔직 담백하게 이끌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뿐만 아니라 논란이 되었던 일, 다른 데에서는 못 꺼내는 일까지 소재로 하는 <무릎팍 도사>에 나온 연예인 중에서는 과거의 루머나 비호감을 극복하고 관심과 호감을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심지어 관심 없던 이나 호감을 가진 이를 비호감으로 돌아서게 하는 연예인도 있었습니다.

<무릎팍 도사>에 나왔다고 모두가 이미지 쇄신이나 호감 폭발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데, 장서희 씨가 얻은 좋은 반응은 솔직하고 매력 있는 성격 덕분일 것입니다. <아내의 유혹>이 방송 내내 몇 달간 '막장 논란'을 일으키며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장서희로서는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물론 그녀의 오랜 무명시절의 서러움, 그럼에도 했던 피나는 노력, 포기하지 않는 끈기 등은 감동적인 사연이며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장서희 씨는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를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배우는 막장 드라마에 대한 책임이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유혹>, 열심히 하는데 속상하다고요?


장서희 씨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매력적이었으며 호감과 칭찬을 얻을 만한 면이 아주 많았다는 것을 전제로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장서희 씨가 <무릎팍>에 나온다고 했을 때 다른 프로그램도 아니고 하니 분명 '막장 드라마' 논란에 대해 물어볼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장서희 씨도 질문지를 미리 받았을 테고요. 그래서 딱 부러지는 그녀가 과연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장서희 씨는 "열심히 하는데 속상하다"라고 대답하더군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면 차라리 이 질문은 편집되는 것이 좋을 뻔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변명해 주지 않습니다. 시쳇말로 이명박도 열심히 합니다.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판을 받는 입장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된 답변입니다.

사람들이 <아내의 유혹>을 가지고 비판하는 이유는 장서희 씨나 제작진이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불륜과 이혼, 출생의 비밀, 복수와 납치, 속임수와 음모가 개연성 없이 난무하는 스토리 전개 때문이지요. 이 소재들로 삶의 이면을 보여 주고 자신과 사회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재로 시청자를 '낚고' 자극만 주려 하기에 <아내의 유혹>이 막장인 것입니다. 이런 개연성 없는 전개를 최선을 다해 쓰고 연기하고 연출한다고 하여 '막장 드라마'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습니다.

물론 장서희 씨 자신이 이 드라마의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더라도, 현재 출연하는 입장에서 자기 드라마를 두고 '막장 맞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었을 테지요. 하지만 지난 <인어 아가씨>에 이어 비슷한, 자극적이고 개연성 없는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한 것을 보면 실제로 장서희 씨는 이 드라마들이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배우는 자기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한다

명품 드라마건 막장 드라마건, 배우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작가가 쓰고 피디가 연출하고 편집해도 결국 글자로 쓰인 내용과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시청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은 장서희 씨 같은 배우입니다.

그런데 장서희 씨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들이 대중문화의 일선에 서 있는 배우로서의 자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한 편, 프로그램 한 편은 돈 내고 나가서 보는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보며 영향력도 큽니다. 그럼에도 좋은 드라마를 하겠다, 내가 출연한 드라마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삶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 줌으로써 사회적인 공감과 이해의 토대를 높이겠다, 이런 '문화적 자부심'을 가진 배우들... 분명히 있겠지요?

물론 배우간의 경쟁은 치열하고 내가 안 해도 다른 배우가 들어갈 테고 대부분의 막장 드라마는 인기가 좋고.. 따위의 것을 생각하면 연예계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각종 매체의 기사에서 보면 배우들이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도중하차 하는 이유를 보면 "비중이 적어서" "출연료가 적당하지 않아서" 일색이더군요.
 
비중 문제와 출연료 문제로 기사화되었더라도 실제로는 내용이 '막장'이라서 도저히 출연하기 힘들었던 배우도 있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배우들은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 그 작품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시청률과 인기라는 단 열매는 먹으면서 작품성에 대한 비판은 작가와 피디에게 넘길 수 없습니다(장서희 씨는 책임을 넘기지 않고 자기 드라마가 막장이 아니라는 제스처를 보였죠).

신인 연기자라면 모를까, 장서희 씨 같은 베테랑 연기자는 더더욱 안목과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안목과 책임감, 문화적인 자부심이 있을 때 드라마가 반짝 뜰 때 반짝 스타로 남는 것이 아니라 긴 안목의 무게감 있는 배우로 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도대체 넌 의도가 뭐냐?

비록 '드르륵' 열고 닫는 문이 달린 흑백텔레비전이었지만 어쨌든 제가 본 것으로 기억하는 최초의 드라마는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야망>이었습니다. 보다 말다 했어도 아마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는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두 형제의 인생 여정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본다'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제가 본 드라마는 수십 편은 족히 되겠지요. 그리고 그중에는 지금까지도 마음과 머릿속에 알싸한 추억이자 그리움으로 남은 것이 있는가 하면(언젠가 그 드라마의 목록들도 한번 풀어놔 보겠습니다), 전혀 기억에 남지 않은 것도 있겠고, 도무지 막장스러움을 견디지 못하여 중도 포기한 드라마도 숱하게 있습니다.

'막장 드라마 전성시대'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릴레이 달리기처럼 방송국이 서로 돌아가면서 방송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각 방송국마다 막장 드라마 한두 편씩은 동시다발적으로 내보내고 있으니 과연 전성시대가 맞긴 한가 봅니다.

언제나 '막장 그라운드'였던 아침 드라마 <하얀 거짓말>에서는 옛 연인끼리 한 집안에서 만난 데다, 남자의 과거를 눈치 챈 아내의 복수가 시작되었으며, '하이틴 막장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는 납치, 왕따, 폭력, 재벌, 삼각관계에 이어 기억상실증과 불치병이 등장했습니다.

여기에 '막장'의 대명사 격인 <아내의 유혹>에서는 차츰 막장화되고 있는 다른 드라마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죽은 것으로 나왔던 진짜 민소희가 살아 돌아와서는 드라마가 방송되는 내내 악을 질러 댐으로써 '막장 오브 막장'임을 과시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겁니다. 80년대부터 제가 보았든 못 보았든 수백 편은 될 드라마들, 예전에는 기획의도를 보면 90% 이상이 '~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였는데 막장이 범람하는 요즘 드라마들은 기획의도가 대체 무엇이냐, 이거죠.

드라마는 여전히 진정한 삶과 사랑과 가족을 찾아 헤매는 중


드라마의 의도는 각각의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이중 '막장'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었거나 현재도 듣고 있는 <꽃보다 남자> <하얀 거짓말> <에덴의 동쪽> <사랑해, 울지 마> <미워도 다시 한번> <아내의 유혹>의 기획의도를 읽어 보았습니다.

<하얀 거짓말>

이 드라마에선 세 명의 여자가 결혼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
나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결혼을 선택한 여자.
오점 없는 인생을 위해 사랑보다는 조건을 선택한 여자.
데인 상처를 치료 받기 위해 불구덩이를 선택한 여자. (중략)
달라진 현대 사회상과 가족관에 맞춰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각기 다른 가족상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에덴의 동쪽>
엇갈린 운명으로 두 번의 인생을 거듭 살아내야만 하는 두 가문의 '파란의 가족사'를 통하여
진정한 사랑과 영혼의 구원이 휴머니즘의 회복임을 해부해 전달해 보이고자 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
이 드라마는 결혼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략)
여기 오십대지만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중년 여자의 피맺힌 복수와 뼈아픈 외로움이 있습니다. 모두가 사랑과 결혼의 부작용인 거지요.
피 끓는 사연... 그 사랑을 위해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사랑해, 울지 마>
아픈 상처를 사랑으로... 용서로... 이해로 치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묻는 드라마.

역시나 '진정한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찾기 위해 드라마는 오늘도 뛰고 있었군요. 그렇다면 '하이틴 막장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어떨까요?


<꽃보다 남자>
언제나 젊음이고 싶은 이들을 위한 하이 판타지 로망스.
드라마란 장르가 현대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최상의 판타지를 보여 준다.

죽은 줄 알았더니 '악 쓰기 신공'을 연마하고 다시 나타난 진짜 민소희 덕분에 막장계를 단번에 평정한 <아내의 유혹>의 기획의도는 이랬습니다.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선택한 결혼에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여자 (중략)
자신을 철저하게 모욕한 남편과 내연녀(친구)를 지독하게 복수하고
새로운 인생과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하! <아내의 유혹>도 '새로운 인생과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려고 만들었군요. 그나마 <꽃보다 남자>는 새롭다고 해야 할까요? 인생의 의미고 진정한 사랑이고 집어치우고 '최상의 판타지를 보여 주'는 것이 기획의도였군요. 그나마 다른 드라마와 비교하면 솔직한 편이라 하겠습니다.

진정한 삶과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출생의 비밀이 필요하고 사람을 납치하고 삼각, 사각관계가 등장하고 혼전 임신을 하고 그렇게 바람이 났던 것이었다니. 한송이 국화를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도 울었겠죠.

무엇이 막장과 명작을 가르는가?

일주일에 열 편도 넘는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으니, 웬만한 대한민국 국민은 진정한 삶과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이미 발견하고도 남았어야 하겠군요. 하지만 기획의도는 홈페이지에만 남겨 놓고 실제로는 자극적인 요소만 잔뜩 발라놓은 조미료 같은 드라마에서는 어떤 '진정성'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비슷한 기획의도를 갖고도, 심지어 비슷한 소재를 갖고도 방영이 끝난 한참 후에도 회자되는 드라마들이 많습니다. 엄태웅의 <부활>, 주지훈, 엄태웅의 <마왕>은 죽은 줄 알았던 이가 다른 신분으로 나타나 복수극을 펼친다는 점에서 <아내의 유혹>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이지만 하나는 명작이 되었고 하나는 막장이 되었습니다. 소지섭, 임수정의 <미안하다, 사랑한다> 역시 자기의 신분을 감추고 복수극을 펼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요.


과연 어떤 요소가 좋은 드라마와 막장 드라마를 가르는 것일까요? 쓰는 드라마마다 명작의 반열에 오르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도 불치병, 삼각관계, 신분상승을 향한 욕구, 재벌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막장 드라마와 소재만 보면 비슷한 것이지요.

결국 '무엇을 다루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루는가'가 문제가 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보게 된다면 막장, 드라마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의 삶을 보며 공감하고 그것을 통해 내 삶까지 돌아보게 된다면 명작이 되는 게 아닐까요?

기획의도는 같더라도 명작 드라마는 그것을 보면서 삶의 다양한 측면을 되새기고 배우게 되며, 등장인물들의 변화와 성장, 성숙을 통해 보는 이까지도 함께 성장하게 되지요. 위에 언급한 <부활>의 강혁(서하은이자 유신혁인), <마왕>의 승하와 오수, <미사>의 무혁과 은채... 이름만 들어도 그들의 삶이, 그들의 행동과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뿐만이 아니라 종영된 뒤 한참 흘렀어도 여전히 내 가슴속, 머릿속 한켠에서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명작 드라마는 함께 울고 웃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진정한 삶과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줍니다.

기획의도는 그럴 듯하게 포장해 놓고 실제로는 '시청률과 광고 수익의 진정한 의미'만 따지는 막장 드라마, 그러라고 준 전파가 아닐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