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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3 김명민과 박용우, 우리 시대 보석 같은 두 배우 (18)

<MBC 스페셜> 김명민 씨 편을 보고 심드렁하긴 참 어려울 것입니다. 그만큼 그가 너무 열심히 하고, 또 열심히 한 만큼 잘하는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한순간에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김명민은 지금처럼 열심히 했으리라 믿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먼길을 돌아왔기에 그가 현재 누리는 인기와 영광이 더욱 빛이 납니다. 어제의 방송을 보면서 저는 김명민 씨에게 감동받는 동시에 또 한 명의 배우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박용우 씨였습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이력


1972년생 김명민 씨는 1996년 SBS 공채로 연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경쟁을 뚫고 공채로 선발되었다는 것이 곧 마음껏 연기를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매일 방송국에 나가서 피디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허리를 숙이며 배역을 부탁했습니다. 그리하여 몇몇 드라마에 단역 및 조연으로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1971년생 박용우 씨는 1995년 MBC 공채로 연기생활을 시작했습니다(공채 이전에 시트콤에 출연한 경력이 있긴 합니다). MBC 공채 24기로 선발되었는데 두 번은 낙방하고 세 번째에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 뒤로 잘 풀릴 것 같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한 피디의 눈에 띄어 주말연속극 <아파트>에 최진실 씨의 상대역으로 발탁되었거든요. 신인으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로, 여기저기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진실, 채시라, 김지호, 김민종 씨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 사이에서 박용우 씨는 너무 얼어붙은 나머지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두어 달이 흐른 뒤 피디에게 불려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보니까... 너는 이걸로 밥 먹고살기는 힘들 것 같다. 다른 직업 알아봐라." 속으로는 엄청나게 상처받았어도 겉으로는 애써 씩씩하게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알고 보니 그 말은 드라마에서 빠지게 된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김명민 씨는 '주연급 얼굴은 아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단역 생활을 몇 년간 지속했습니다. 박용우 씨는 데뷔하자마자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지만 '연기로 먹고살기는 힘들겠다'라는 말을 들으며 드라마에서 '잘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다

그래도 두 배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김명민 씨는 방송국에 3년간 매일 나가서 똑같은 레퍼토리로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죠. 연기자 김명민이라고요. 어제 보았던 피디에게 오늘도 나가서 인사하고, 3개월 전 개편 때 새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나를 기용하지 않았던 피디에게 오늘도 나가서 다음 드라마에는 꼭 저를 한번 써 봐 달라고 인사를 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박용우 씨는 공채 동기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으며 주말연속극에 캐스팅되었기에, 드라마에서 하차할 때에도 가장 '망신'스러웠을 것입니다. 여성 연기자만 돋보인 영화 <올가미>에서도 그는 호평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배우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비중'입니다. 한번 주연급(주조연급)으로 올라갔던 배우가 조연, 심지어 단역으로 내려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박용우 씨는 '행인1'로 돌아갔습니다. 최진실의 상대역에서 '행인'이 된 그, 그럼에도 시련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명민 씨는 단막극에 주연으로 처음 캐스팅되었다가 엎어진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긴 호흡의 극도 아니고 단막극일 뿐이지만 주연으로 데뷔할 기회가 온다는 게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배우에게는 연락도 없이 주연 제의를 취소하다니, 그의 눈에서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이 읽혔습니다.

박용우 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행인과 포졸 등의 단역으로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 수업을 받던 그에게 미니시리즈의 조연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스포츠가 소재인 드라마라서 박용우 씨는 이전에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그 운동을 두 달 동안이나 연습했습니다. 마침내 첫 대본 연습 날,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중에 연기자 선배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용우도 출연하는구나. 그래, 무슨 역이야?" 알고 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역할이 그 선배에게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자비를 들여 어려운 스포츠를 배운 것도, 두 달 동안의 노력도 아무 소용 없이, 민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방송국을 나서는데 그날따라 비까지 내렸다고 하더군요.

김명민과 박용우, <스턴트맨>에서 만나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난 것이 바로 영화 <스턴트맨>이었습니다. 만년 단역, 조연 생활을 계속해온 김명민 씨, 아무리 노력해도 연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곱상한 외모 때문에 부잣집 아들이라는 비슷비슷한 패턴만 반복해온 박용우 씨. 둘이 주연이 되어 거친 액션에 코믹한 요소까지 가미한 영화를 찍었지만 80% 넘게 진행되었을 때 촬영이 중단되었습니다.

박용우 씨는 "말랑한 역만 하다 끝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을 때 만난 형사 역할"에 모든 것을 거느라 2년간 다른 작품을 고사하고 매달렸다고 합니다. 김명민 씨는 "내가 더 매력 있는 배우, 인지도 있는 배우였다면 이렇게 촬영이 중단되지는 않았겠지" 하는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쯤에서 두 배우는 '해도 해도 안 되는 현실'에 진짜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사극으로 일어서다


그때 김명민, 박용우, 두 배우의 나이는 서른하나, 둘이었습니다. 배우로서 한창 꽃 같을 나이에 그렇게 일어서다 또 좌절하고 일어서다 또 좌절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안받은 역할이 김명민 씨는 '이순신'이었습니다. 엎드려 기다린 자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지요. 그는 주위의 모든 우려를 불식시킨 것은 물론, 그해 연기대상을 수상합니다.

박용우 씨는 <무인시대>에서 '경대승' 역할로 이미지 쇄신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유약하고 곱게 자란 이미지의 역할만 주로 맡던 그에게 경대승 역할이 맡겨진 것은 의외였습니다. 게시판에서는 '의외의 캐스팅이다'라는 말부터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는 비난까지 난무하는 상황이었지만, 그해 연말 결국 박용우 씨는 처음으로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박용우의 연기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영화 <혈의 누>를 보고 어느 기자는 이렇게 기사를 썼더군요. "<혈의 누>에는 반전이 있다. 그 반전이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박용우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박용우의 연기가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주는 배우


이후 김명민 씨는 <하얀 거탑>의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를 거치며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연기자로 올라섰습니다. 박용우 씨도 <달콤 살벌한 연인> <핸드폰> 등에서 보인 연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얻었습니다. 둘 중 누가 더 뛰어난 연기자인가 하는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두 사람 다 지금도 입에 연필을 물고 발음연습을 하는 그 열정과 겸손함, 몇 년을 단역생활만 하면서도 언젠가는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 주겠다는 욕심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집념이 오늘의 그들을 만들었겠지요.

'배우'란 어떤 직업일까요? 얼굴 잘생기고 몸매가 멋진 것이 배우의 1차 조건일까요? 김명민, 박용우 씨 두 분 다 잘생긴 얼굴들이지만 얼굴로 승부하는 배우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이름만으로도 연기에 신뢰감을 주는 몇 안 되는 배우입니다. 막장 드라마 논란과 한국 영화의 위기론이 끊이지 않는 요즘, 이런 배우가 있어서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에도 여전히 미래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