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습니다. 오늘 아침 MBC 엄기영 사장이 사원들에게 보낸 담화문을 읽어봤거든요. “뉴스데스크 앵커는 교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앵커 교체는 뉴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것처럼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쓰셨더군요.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을 담화문 형식으로 발표한다고 MBC 직원들이 믿을까? 좀 딱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 때 문득 궁금해진 겁니다. 방송사에서 ‘경쟁력’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시청률을 이야기하는 것일텐데, 엄기영 앵커 시절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까? 과연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최근들어 급격히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원래 낮았을까.
마음 같아선 시청률 조사기관에 의뢰해 최근 10년 동안 <뉴스데스크> 시청률 추이를 알려달라고 하고 이를 앵커의 변화와 관련해 분석해보고 싶었지만, 제가 부탁한다고 그런 자료를 척척 내어 줄 시청률 조사기관이 있겠어요? 그래서 아쉬운대로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관련 기사를 검색해 봤는데, 참 재미있는 기사를 여럿 보았습니다.
월드컵 100일을 앞둔 3월1일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몇 년만에 20%에 근접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1일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출전팀인 대한민국 대 앙골라 국가대표팀 축구경기로 지상파 3사 메인뉴스 시청률이 희비가 엇갈렸다. (중략) <뉴스데스크>는 SBS에 비해서도 메인뉴스 시청률이 떨어지는 수난을 겪었었다. 하지만 이날 수 년만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월드컵을 앞둔 특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2006년 3월2일 뉴스엔 기사
기사 위에는 엄기영·김주하 앵커가 나란히 웃고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습니다. 몇 년만에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니 기쁜 일이겠습니다만, 그 원인은 결코 앵커 때문이 아니라 뉴스에 앞서 방송된 국가대표팀 축구경기 때문이라는 군요. 그럼 엄기영 앵커는 <뉴스데스크> 시청률, 즉 경쟁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단 말인가요? 엄기영 앵커, 시청률 등으로 검색해 보니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브랜드 1위 앵커 엄기영이 KBS에 지는 이유
산업정책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영역별 브랜드 파워에서 TV 앵커 부분 1위는 4년째
MBC 엄기영 앵커가 차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부동의 1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메인인 9시 뉴스 시청률을 보면 영 딴판이다. MBC 뉴스가 KBS 뉴스에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뭘까. (중략)
설득력 있는 대답은 직전 프로의 시청률일 것이다. 잠시 9시 메인뉴스와 직전 프로의
시청률 상관관계를 살펴보자.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에 따르면 KBS 9시 뉴스의
10월 평균 시청률은 17.9%였다. MBC는 20위권 밖이어서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
참고로 20위는 13.9%이니 MBC 뉴스 데스크는 이보다 낮은 셈이다.
KBS 뉴스의 직전 프로는 일일연속극 ‘미우나고우나’로 시청률은 29.6%였다.
MBC 뉴스 직전 프로인 시트콤 ‘김치치즈스마일’은 MBC 뉴스데스크와
마찬가지로 20위권 밖이었다. 일단 분명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후략)
-2007년 11월27일 조이뉴스24 기사 |
그러니까 엄기영 사장님은 앵커 시절 TV 앵커부문 브랜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와 신뢰를 한 몸에 받으셨군요. 그런데도 <뉴스데스크>의 시청률, 그러니까 본인이 말씀하신 프로그램 경쟁력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셨다는데요, 그 이유는 (앞서 살펴본 기사와 마찬가지로) ‘뉴스 직전에 어떤 프로그램을 방송하느냐’가 뉴스 시청률을 좌우하기 때문이라는군요.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 동안 KBS 뉴스 직전에 방송된 일일극들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가 아니라, 그 한해 전체 시청률 1~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2006년 <열아홉순정>, 2007년 <하늘만큼 땅만큼>, 2008년 <미우나 고우나>의 시청률은 40%를 넘길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죠. 그 시간대에 방송된 MBC 드라마나 시트콤 중에서 화제가 됐던 것은 2007년에 방송된 <거침없이 하이킥> 정도랄까? <거침없이 하이킥>이 방영 당시 <뉴스데스크> 시청률에 정확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영향이 있었나 봅니다. SBS가 폐지했던 일일극을 부활할 정도였으니까요.
SBS가 일일연속극을 3년만에 다시 선보인다. SBS는 10월8일 첫방송을 목표로 일일연속극 <그 여자가 무서워>를 준비중이다. (중략)
그러나 SBS는 일일극을 부활하면서 <8시뉴스> 뒤가 아닌 앞에 배치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는 일일극을 통해 <8시뉴스> 시청률 상승을 꾀하려는 의도. (중략)
실제로 SBS <8시뉴스>는 MBC <나쁜여자 착한여자>와 <거침없이 하이킥>이 맹위를 떨치던 올 상반기 평일 시청률이 5%를 넘지 못하는 날이 한동안 이어지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후략) - 2007년 8월29일 연합뉴스 기사
그러니 이들 기사에 따르면, KBS 9시 뉴스가 일일극의 위력에 힘입어 몇년 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MBC와 SBS가 뉴스 직전 편성된 드라마 혹은 시트콤의 인기에 따라 엎치락 뒤치락하는 형국이군요. 요즘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이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뉴스데스크>의 고전이 불보듯 훤하네요.
이런 분석을 보고 있노라니, 슬몃 자존심도 상하네요. 대한민국 국민들은 앵커나 뉴스의 질 등은 전혀 상관없이, 그저 (특히 막장)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나서 채널을 고정한 채 아무 생각없이 뉴스를 본다는 얘기가 되나요? 아무튼 뉴스 시청률을 다룬 어떤 기사에도, 앵커를 바꿔서 경쟁률이 강화됐다는 이야기는 없더군요. (간혹 여성 앵커의 '미모' 등등이 시청률에 도움이 됐다는 기사는 있었어요.)
단, 최근 <뉴스데스크> 시청률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더라고요. 황우석 교수 문제가 불거졌을 때와 지난 촛불 정국 때도 몇몇 해당언론들(요즘은 이렇게 쓰는 게 유행이라죠?)이 무슨 의도에선지 앞다퉈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을 들먹이곤 했더군요.
어쨌거나 엄기영 사장님, 무얼 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요. <뉴스데스크> 경쟁력은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나 일일극 <사랑해, 울지마>에 달려있다고, 수많은 언론들이 보도했다니까요.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선 보도국이 아닌 예능국·드라마국과 긴밀한 협의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신경민 앵커에게 우호적인 시청자든 아니든, 그가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서 뉴스 뒤에 붙는 광고를 꾹 참고 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 광고를 특별히, 아주 비싸게 팔아보시면 어떨까요.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대한민국 뉴스 앵커 중에서 ‘그가 오늘 무슨 말을 할까’를 두고 이토록 관심의 대상이 된 앵커가 있기는 한가요. 그런 앵커야 말로 진정 경쟁력 있는 앵커가 아니겠어요. 그러니 경쟁력 얘긴 그만두세요. 공연히 망신살 뻗치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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