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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2 내조의 여왕은 거래의 여왕! (2)

내조의 여왕은 거래의 여왕!

Posted 2009/04/02 11:08


<
내조의 여왕> 가라사대, 남자는 찌질하다. 그가 사장이건, 이사건, 부장이건, 백수건 상관없이, 세상 남자들은 죄다 찌질하다.

서울대 나와 멘사 회원이면 뭐하나. 눈치 코치 없는데다 매사에 너~무 정의로우셔서 만날 소파에서 TV 끼고 빈둥거리는데. 대기업 부장이면 뭐하나.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한 첫사랑 그녀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나름 성공했건만, 다시 만난 그녀를 쿨하게 대하긴 커녕 유치한 복수심을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 애꿎은 아내에게 공연히 버럭거린다. 이 회사 사장인 재벌 2세? 부모에겐 찍소리도 못하는 주제에, 정략결혼한 아내에게 틈만나면 징징댄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진 거, 그 여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한 거, 기타 등등 내 불행은 다 니 탓이야! ” 허전한 맘 달래고자 밤낮으로 매춘에 힘쓴다.

그런데 이 찌질한 남자와 사는 여자들, 진정 잘났다. 남편 취직시키고 출세 시키는데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바치기 때문에? 천만의 말씀. 계산이 확실해서다. 그 남자와 살면서 무얼 주고 무얼 받을지 정확하게 안다. 쓸데없는 감정노동을 지양한 채 챙길 것 똑부러지게 챙기는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난 우월적 존재들이다. 이런 여자들, 전에도 봤던가?

찌질한 남자에 대처하는 여자들의 자세

찌질한 남자 만나 고생하는 여자들은 숱하게 봤다. 그런 남자에게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쳐 충성한 여자들은 대체로 버림 받고 울었다. 지켜보는 나도 울었다. 그 여자들이 통곡하며 “부셔버릴거야!” 다짐할 땐 함께 이를 앙다물었고, 그 남자보다 백배 천배 나은 남자 만나 인생 역전을 하던 날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세월이 흘러, 버림은 받았으되 재벌2세 도움 없이 홀로 짜릿한 복수에 성공하는 <발칙한 여자들>도 등장했는데, 시대에 걸맞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또 이렇게 보는 것인가 싶어 더욱 굵직한 눈물이 주르륵 흘렀더랬다.

찌질한 남자에게 인생 허비하느니 깨끗이 갈라서고 제 갈길 찾겠다는 ‘노라’들도 더러 보았다. 쥐꼬리만한 월급 갖다주면서 아내 무시하기를 일 삼고 한편으론 ‘인생이 너~무 외롭다’면서 기회만 잡으면 젊은 여자와 사랑타령하는 남편, 참고 참다가 박차고 나오면 역시 생계가 문제였다. 모아둔 게 집 한 칸 뿐이니 위자료 빤하고,  양육비를 제 때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권장(만)하는 현대사회가 아닌가. 그녀들은 평소 갈고닦은 음식 솜씨로 샌드위치 가게(드라마 <앞집 여자>)도 열고, 김치 감자탕을 홈쇼핑 히트상품의 반열에 올려놓으며(드라마 <두번째 프로포즈>) 마침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돈과 명예, 그리고 부상으로 연하의 애인까지 받았으니, 그녀들의 인생역전에 또한번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신기하고 놀라운 여왕들의 습격

그런데 <내조의 여왕>을 보면, 눈물 대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시다시피,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이 죄다 ‘내조의 여왕’이다. 이 언니들은 남편이 찌질하다고 해서 이혼? 절대 안한다. 찌질한 건 찌질한 거고, 근본이야 어쨌건 그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게 먼저다. 남편이 백수면 일단 취직부터 시키고, 남편이 부장이면 다른 부장들보다 일찍 임원이 될 수 있도록 비서가 되어주고, 남편이 이사면 사장도 무시 못할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부인회 회장을 맡아 직원과 그 가족을 한방에 장악해 주신다. 잘 키운 남편 하나 로또 대박 안 부럽다는 심정으로, 철부지 남편에게 때론 “철 좀 들어라” 타이르고, 때론 “너 잘났어, 너 할 수 있어” 엉덩이 토닥여주고, 때론  “이혼할거야!” 맘에도 없는 최후통첩 날리면서.

이혼을 왜 하나. 그녀들은 안다. 남편이 백수라고 이혼해 봤댔자, 노라처럼 집을 뛰쳐나와 봤자, <두번째 프로포즈>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야 말로 로또 당첨 확률이다. 말이 좋아 홀로서기지, 서른 넘은 주부가 재취업해서 부장을 하겠나, 이사를 하겠나. 계약직, 임시직도 얻기 어려울 게 뻔하고 그간 누리던 사회경제적 지위는 한 순간에 10등급쯤 추락한다. 드라마 대사 대로 주인공이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면, 서울대 나온 백수 남편을 하루빨리 사람 만드는 게 가장 빠르고, 쉽고, 심지어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리하여 남편이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거듭나 제 몫을 다하는 한, 여왕들은 본인이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 떳떳하고 온전하게 누린다. 물론 남편을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그녀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주인공이 백수 남편의 취직을 위해 온갖 굴욕을 견디면서도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한바탕 퍼붓지 않는 것은, 심성이 착하거나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구직을 위한 그 모든 수고가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 본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왕들은 결코 이런 신파조 대사 안 날린다.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여왕은 희생 안 한다. 헌신은 한다.  물론 그 헌신에 대한 댓가와 보상은 철저히 챙긴다.

헌신의 댓가는 결코 ‘사랑’이 아니다. 생일을 맞은 이사 부인은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 내 생일 선물 안 줘?” 남편이 대답한다. “여기 이 선물들이 다 내 마누라라서 받은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준거야.” 그 말을 들은 아내가 “실반지 하나라도 당신이 주는 게 중요하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며 항의한다면? 반칙이다. 부인회 회장 노릇 해가며 남편을 실력자로 만들어 놓은 댓가로 뜬금없이 ‘사랑’을 받겠다는 얘긴데, 애정결핍은 부모와 해결봐야지 남편과 해결할 일이 아니다. 자신은 몸과 마음을 다바쳐 눈에 보이는 부와 명예를 선물해 놓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언제 변할지도 모르는 사랑을 댓가로 받겠다는 건 거래의 기본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얘기 아닌가. 그런 사랑에 목매다간 “부셔버릴거야!” 선언하는 날 오고야 만다. <내조의 여왕>이라면, 흐뭇한 미소 지으며 아무개 부장 와이프가 들고온 진주 반지 손가락에 끼어보는 게 맞다. 그래서 여왕 사전에 없는 또한가지 신파조 대사가, “당신 날 사랑하긴 했어?”다.

여왕이여, 초심을 잃지 말라

도무지 범접하기 힘든 그녀들의 쿨함, 발군의 계산 능력. 남편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지로 살되, 죽는 날까지 단 한 순간도 나와 남편을 동일시해 그에게 내 생을 건다거나 영혼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안 맞는 취향 억지로 맞추는 일 따윈 없는 그 태도를, 나로선 꼭 흉내내고 싶진 않지만 진심으로 존중은 한다. 감히 말하건대, <내조의 여왕>은 한국 드라마 속 ‘아줌마’ 캐릭터를 새로 썼다.  

그래서 행여 회를 거듭하면서 여왕들이 변심한 나머지 “내조에 힘써 남편이 성공하면 뭘 해, 사랑 넘치는 화목한 가정이 최고지” 식의, 여느 드라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사를 날리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 것 같다.(실은 조짐이 보이기에 이 글을 썼다) 사랑이 결혼의 명분이되 본질이 아니라고 이토록 노골적으로 감칠맛 나게 얘기해 놓고, 갑자기 사랑 타령 하면 어쩌란 말이냐. 자신의 청춘과 미모를 서울대 졸업장에 걸고, 결혼 뒤 그 졸업장에 걸맞는 삶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 주인공이 남편에게 ‘사랑’만 받고 만족한다면,  그건 판타지 드라마다. 누구를 위한? 당연히 찌질한 남자들을 위한 판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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