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뢰 감독님, 지못미
Posted 2009/02/26 17:12
황인뢰 감독이 돌아왔다. 일지매와 함께? 아니, 책녀와 함께.
오랜 팬임을 빙자해 감히 말하자면, 황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궁>은, 또한 가장 황인뢰 감독답지 않은 드라마였다. 방영 이후 <궁> 팬미팅에 참석한 황 감독은 “당황스럽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드라마를 만든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건 결코 겸양이 아니다.
황 감독은 드라마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실험’을 했다. 영상이든 형식이든, 배우든 캐릭터든, 그가 만든 드라마는 몹시 낯설고 때론 불편했으며 그래서 기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당시엔 인터넷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만) 그를 좋아하는 팬은 한 줌에 불과했을 테고, 더러는 ‘드라마로 예술하신다’며 비아냥대는 안티팬도 있었겠으나, 그 보다 더 많은 이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대중은 낯선 것에 쉽게 열광하지 않으니까.
최근 언론이 황 감독 이야기를 할 때 빼놓지 않는 수식인 '화려한 색감, 빼어난 영상미' 역시 그가 해온 실험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영상미'라는 게 가당치도 않았던 시절, 집 마당 혹은 마루에 온 가족이 모여 대사를 주고 받는 연극적 '떼 샷'이 난무하던 즈음에 무려 '영상미'를 추구했으니, 실험을 넘어 모험이라 할 만하다.
17년 전 황인뢰 감독이 연출한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를 우연히 보았을 때, 우선 서술어로 끝나는 드라마 제목도 이상했지만(당시엔 그 드라마가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르코브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대도, 러시아 문학을 드라마로 만들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도무지 현실감 없는 장면이 주구장창 펼쳐져 깜짝 놀랐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파랑색 상자(?) 위에 올라앉아 날씬한 종아리를 발랄하게 흔들던 이미연의 모습이 생생하다. 가수 권인하가 흡사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일반인처럼 대사를 읊던 것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황 감독은 배우가 아닌 이를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실험도 즐겼다. 지금은 어떤 중견 배우보다 잘 나가는 가수 김창완도 그가 '발굴'한 배우다.)
이후 황인뢰 감독이 주찬옥 작가와 손잡고 만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나 <고개숙인 남자>에선 화려한 색감 대신 등장인물의 심리를 배우의 표정이나 대사가 아닌 배경, 조명 등으로 드러내는 실험이 도드러졌다. 제목만 보고 '여권신장'의 흐름 속에 역차별 받는 남성들의 문제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주말극이려니 여겼던 <고개숙인 남자>는 그러나 예상보다 좀 더 복잡한 이야기였는데, 화면이 몹시 어둡고 심지어 느와르 분위기 마저 느껴져 주말 저녁 밥상 앞에 앉은 우리 가족들에게 "뭐가 저렇게 칙칙하냐"는 원성을 사곤 했다.
<연애의 기초>는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른 각도로 비췄으니 영화 <오, 수정!>의 선배 격이라고 할까. 뮤직 비디오로도 5분 안에 이야기를 못 끝내 시리즈로 나오는 판에 5분짜리 드라마 <한뼘 드라마>를 시도한 게 황인뢰 감독이라는 건, 그러니 별로 놀랄 일이 아닌 셈이다.
<궁>을 보면서, 황 감독이 대중들에게 조금도 낯설지 않은 웰 메이드 트랜디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높은 시청률과 더불어 그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스타 감독이 됐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아, 시스템이 바뀐 탓인가 싶었다. 그는 더 이상 방송사 드라마국 안에서 '한 예술 하는 선배 피디'로서 시청률에 ( (어찌 신경을 끊을 수야 있겠냐만) 굴하지 않고 다시금 차기작을 기획, 연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수많은 드라마 제작사들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며 지상파 3사 드라마의 90% 이상을 제작, 납품하는 여건 속에, 그 역시 한 제작사의 (심지어) 임원으로, 흥행과 수익에 골몰해야 하는 처지일 테니. 이제 그의 (무모한) 실험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일까, 감상에 젖었더랬다.
황 감독이 <돌아온 일지매>를 연출하다는 소문을 듣고, 아, 이제 그가 드디어 와이어 액션까지 찍어 야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그가 <영웅>의 장이모우보다는 <화양연화>의 왕자웨이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라 신들린 듯 기왓장을 밟으며 달리는 일지매를 촬영할 그의 모습이 좀처럼 그려지질 않았다. 그런데!
그가 책녀와 함께 돌아왔다. 이 생뚱맞은 전지적 시점의 화자는, 역사적 배경을 알려주고 등장인물 캐릭터를 설명하고 인물의 심경을 묘사하며 (드라마에 비추어) 현실을 풍자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이야기는 시공을 뛰어넘어 마음대로 노닐고, 방대한 만화 원작이 어느 한 구석 허투루 대접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무척 낯설었고, 그래서 참 반가웠다. 일지매에 감정 몰입을 하지 않고 일지매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고, 그래서 때로 정일우가 일지매의 재연 배우로 활약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많은 이들이 좋아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인터넷 언론들이 일부 네티즌들의 부정적 반응에 기자 자신의 (적극적) 감상평을 얹어 "몰입을 방해하는 책녀 논란"을 제기하고, 이에 황 감독이 "책녀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설명하고, 뒤이어 드라마에서 책녀의 분량이 점차 줄어들자 비로소 깨달았다. 드라마 제작 시스템만 바뀐 게 아니다. 드라마를 둘러싼 여론과 매체 환경 또한 바뀌었다. 감독이 첫방부터 종영까지 뚝심있게 '한 예술'하시기엔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 나는 황 감독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는 것보다, 그게 성공인지 실패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얼렁뚱땅 흐지부지 되어버릴까 봐, 조바심이 났다.
지난 연말, 지상파 드라마 국장을 지낸 한 분이 ’드라마의 위기’를 언급하면서 "이제 미니시리즈는 끝났다, 모든 드라마가 연속극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에 이렇게 대꾸했더랬다. "그게 시청자들에게 위기라는 건가요, 아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한테 위기라는 건 가요, 어차피 드라마는 방영될 테고 시청자들은 좋아하는 걸 골라 볼텐데요."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방송사 혹은 제작진)가 위기 운운하는 게 얄미워서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마음이 안 좋았다. 시청률을 좌우하는, 드라마의 고정 시청층이 갈수록 고령화되면서 극성 강한 연속극이 가장 ’안전한’ 콘텐츠로 떠오른 것이 사실이다(이게 최근 논란이된 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배후 세력이라 짐작된다). 게다가 광고가 워낙 안 팔려 시청률 30%를 넘긴 드라마도 수익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니 드라마 제작사들이 위험을 무릅쓴 채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주말극이나 일일극에 어울릴만한 소재와 내러티브로 무장한 <미워도 다시 한번>이 방영 초반 그럭저럭 순항 중이던 <돌아온 일지매>를 단박에 누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 때 나눈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물론 나는 <돌아온 일지매>의 본방을 사수하면서 다음날 <미워도 다시 한번>도 인터넷 다시보기로 꼭 보는, 못말릴 잡식성 드라마 마니아다. 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소멸되지 않는 한, 내가 크게 비분강개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나는, 가끔은 낯설고 신기한 드라마를 보고 싶다. 드라마 감독이 (영화 감독 못지않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자랑하며 이름으로 기억되는, 한국 드라마판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 계속되길 바란다. 천편일률 싫어하는 거, 나만 그런가?
(책녀의 등장으로) "몰입 불가능한"데다 시청률도 낮은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를 연출한 뒤에도, 황 감독은 특유 의 '실험'을 할 기회를 또 갖게 될까? 그의 후배들은 선배 못지않게 '한 예술'하겠다는 꿈을 꿀 수나 있을까?
질문은 했으되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내가 아니기에, 지난 이십여년간 나를 몹시 들뜨고 재미있게 만들어준 황인뢰 감독에게 고작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게 서글프다.
오랜 팬임을 빙자해 감히 말하자면, 황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궁>은, 또한 가장 황인뢰 감독답지 않은 드라마였다. 방영 이후 <궁> 팬미팅에 참석한 황 감독은 “당황스럽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드라마를 만든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건 결코 겸양이 아니다.
황 감독은 드라마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실험’을 했다. 영상이든 형식이든, 배우든 캐릭터든, 그가 만든 드라마는 몹시 낯설고 때론 불편했으며 그래서 기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당시엔 인터넷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만) 그를 좋아하는 팬은 한 줌에 불과했을 테고, 더러는 ‘드라마로 예술하신다’며 비아냥대는 안티팬도 있었겠으나, 그 보다 더 많은 이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대중은 낯선 것에 쉽게 열광하지 않으니까.
최근 언론이 황 감독 이야기를 할 때 빼놓지 않는 수식인 '화려한 색감, 빼어난 영상미' 역시 그가 해온 실험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영상미'라는 게 가당치도 않았던 시절, 집 마당 혹은 마루에 온 가족이 모여 대사를 주고 받는 연극적 '떼 샷'이 난무하던 즈음에 무려 '영상미'를 추구했으니, 실험을 넘어 모험이라 할 만하다.
17년 전 황인뢰 감독이 연출한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를 우연히 보았을 때, 우선 서술어로 끝나는 드라마 제목도 이상했지만(당시엔 그 드라마가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르코브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대도, 러시아 문학을 드라마로 만들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도무지 현실감 없는 장면이 주구장창 펼쳐져 깜짝 놀랐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파랑색 상자(?) 위에 올라앉아 날씬한 종아리를 발랄하게 흔들던 이미연의 모습이 생생하다. 가수 권인하가 흡사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일반인처럼 대사를 읊던 것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황 감독은 배우가 아닌 이를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실험도 즐겼다. 지금은 어떤 중견 배우보다 잘 나가는 가수 김창완도 그가 '발굴'한 배우다.)
이후 황인뢰 감독이 주찬옥 작가와 손잡고 만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나 <고개숙인 남자>에선 화려한 색감 대신 등장인물의 심리를 배우의 표정이나 대사가 아닌 배경, 조명 등으로 드러내는 실험이 도드러졌다. 제목만 보고 '여권신장'의 흐름 속에 역차별 받는 남성들의 문제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주말극이려니 여겼던 <고개숙인 남자>는 그러나 예상보다 좀 더 복잡한 이야기였는데, 화면이 몹시 어둡고 심지어 느와르 분위기 마저 느껴져 주말 저녁 밥상 앞에 앉은 우리 가족들에게 "뭐가 저렇게 칙칙하냐"는 원성을 사곤 했다.
<연애의 기초>는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같은 상황을 서로 다른 각도로 비췄으니 영화 <오, 수정!>의 선배 격이라고 할까. 뮤직 비디오로도 5분 안에 이야기를 못 끝내 시리즈로 나오는 판에 5분짜리 드라마 <한뼘 드라마>를 시도한 게 황인뢰 감독이라는 건, 그러니 별로 놀랄 일이 아닌 셈이다.
<궁>을 보면서, 황 감독이 대중들에게 조금도 낯설지 않은 웰 메이드 트랜디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높은 시청률과 더불어 그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스타 감독이 됐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아, 시스템이 바뀐 탓인가 싶었다. 그는 더 이상 방송사 드라마국 안에서 '한 예술 하는 선배 피디'로서 시청률에 ( (어찌 신경을 끊을 수야 있겠냐만) 굴하지 않고 다시금 차기작을 기획, 연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수많은 드라마 제작사들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며 지상파 3사 드라마의 90% 이상을 제작, 납품하는 여건 속에, 그 역시 한 제작사의 (심지어) 임원으로, 흥행과 수익에 골몰해야 하는 처지일 테니. 이제 그의 (무모한) 실험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일까, 감상에 젖었더랬다.
황 감독이 <돌아온 일지매>를 연출하다는 소문을 듣고, 아, 이제 그가 드디어 와이어 액션까지 찍어 야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그가 <영웅>의 장이모우보다는 <화양연화>의 왕자웨이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라 신들린 듯 기왓장을 밟으며 달리는 일지매를 촬영할 그의 모습이 좀처럼 그려지질 않았다. 그런데!
그가 책녀와 함께 돌아왔다. 이 생뚱맞은 전지적 시점의 화자는, 역사적 배경을 알려주고 등장인물 캐릭터를 설명하고 인물의 심경을 묘사하며 (드라마에 비추어) 현실을 풍자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이야기는 시공을 뛰어넘어 마음대로 노닐고, 방대한 만화 원작이 어느 한 구석 허투루 대접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무척 낯설었고, 그래서 참 반가웠다. 일지매에 감정 몰입을 하지 않고 일지매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고, 그래서 때로 정일우가 일지매의 재연 배우로 활약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많은 이들이 좋아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인터넷 언론들이 일부 네티즌들의 부정적 반응에 기자 자신의 (적극적) 감상평을 얹어 "몰입을 방해하는 책녀 논란"을 제기하고, 이에 황 감독이 "책녀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설명하고, 뒤이어 드라마에서 책녀의 분량이 점차 줄어들자 비로소 깨달았다. 드라마 제작 시스템만 바뀐 게 아니다. 드라마를 둘러싼 여론과 매체 환경 또한 바뀌었다. 감독이 첫방부터 종영까지 뚝심있게 '한 예술'하시기엔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 나는 황 감독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는 것보다, 그게 성공인지 실패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얼렁뚱땅 흐지부지 되어버릴까 봐, 조바심이 났다.
지난 연말, 지상파 드라마 국장을 지낸 한 분이 ’드라마의 위기’를 언급하면서 "이제 미니시리즈는 끝났다, 모든 드라마가 연속극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에 이렇게 대꾸했더랬다. "그게 시청자들에게 위기라는 건가요, 아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한테 위기라는 건 가요, 어차피 드라마는 방영될 테고 시청자들은 좋아하는 걸 골라 볼텐데요."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방송사 혹은 제작진)가 위기 운운하는 게 얄미워서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마음이 안 좋았다. 시청률을 좌우하는, 드라마의 고정 시청층이 갈수록 고령화되면서 극성 강한 연속극이 가장 ’안전한’ 콘텐츠로 떠오른 것이 사실이다(이게 최근 논란이된 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배후 세력이라 짐작된다). 게다가 광고가 워낙 안 팔려 시청률 30%를 넘긴 드라마도 수익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니 드라마 제작사들이 위험을 무릅쓴 채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주말극이나 일일극에 어울릴만한 소재와 내러티브로 무장한 <미워도 다시 한번>이 방영 초반 그럭저럭 순항 중이던 <돌아온 일지매>를 단박에 누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 때 나눈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물론 나는 <돌아온 일지매>의 본방을 사수하면서 다음날 <미워도 다시 한번>도 인터넷 다시보기로 꼭 보는, 못말릴 잡식성 드라마 마니아다. 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소멸되지 않는 한, 내가 크게 비분강개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나는, 가끔은 낯설고 신기한 드라마를 보고 싶다. 드라마 감독이 (영화 감독 못지않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자랑하며 이름으로 기억되는, 한국 드라마판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 계속되길 바란다. 천편일률 싫어하는 거, 나만 그런가?
(책녀의 등장으로) "몰입 불가능한"데다 시청률도 낮은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를 연출한 뒤에도, 황 감독은 특유 의 '실험'을 할 기회를 또 갖게 될까? 그의 후배들은 선배 못지않게 '한 예술'하겠다는 꿈을 꿀 수나 있을까?
질문은 했으되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내가 아니기에, 지난 이십여년간 나를 몹시 들뜨고 재미있게 만들어준 황인뢰 감독에게 고작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게 서글프다.
"황인뢰 감독님, 지못미. 지못미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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