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예쁜 남자들이 온다
Posted 2009/02/20 13:45
<브로드앤TV 매거진> 1월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조금 지난 글이지만, 요즘 꽃남 인기에 편승(!)해 늦었지만 <매드포TV>에 올려봅니다.
“나에게 이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어!”
스스로 F4(‘꽃’을 뜻하는 ‘Flower’에서 유래했다)라 부르며 학교를 주름잡는 네 남자의 매력에 모두가 굴복한다. 평균 키가 180cm를 넘고 몸무게는 66.75kg, 한 달 평균 용돈은 만화 <꽃보다 남자> 기준으로 275만원(1992년에 고등학생 용돈이 이만큼이었단다), 얼굴은 조각 같은 꽃미남. 상류층만 입학한다는 고등학교에서도 최상류층으로서 주변의 관심과 부러움을 받기에 F4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 학교에 ‘천민’ 계급이나 다름없는 여자 아이가 들어온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부모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상류층 학교에 온 그녀는 3년이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F4 리더의 무례하고 불의한 행동을 참다못해 주먹을 한방 날린 뒤 이렇게 말하고 만다. “자기 힘으로 돈 벌어본 적도 없으면서!”
지금껏 그에게 이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다. 남자는 큰 충격에 빠지지만, 그와 동시에 당찬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보지 않은 남자,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는 남자,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믿던 남자는 제대로 사랑에 빠져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꽃보다 남자>는 전형적인 ‘나에게 이렇게 대한 사람은 없었어!’ 이야기다. 까칠하고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이 평범한 여자를 만나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1992년 일본 만화잡지 <마가렛>에 연재되기 시작해 2004년까지 단행본 36권으로 발행되었고,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총 17개국에서 5800만 부 이상 팔린 로맨스 만화의 최고 베스트셀러다.
엄청난 인기는 다른 장르로도 이어졌다. 1995년에는 일본에서 영화로, 다음해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고, 2001년 대만에서는 <유성화원(流星花園)>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원작을 충실히 재연한 내용과 매력적인 캐릭터에 힘입어 여주인공 서희원과 F4 멤버인 언승욱, 주유민, 주효천, 오건호는 아시아의 별로 떠올랐다. 남 주인공들은 아예 ‘F4’라는 그룹을 결성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해 중국 정부가 방송 잠정중단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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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는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아이돌스타 마쓰모토 준이 주연을 맡은 <꽃보다 남자>는 평균 시청률 19.8%로 가을시즌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만화가 처음 세상에 나온 지 1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인기는 여전했던 것이다. 팬들의 성원으로 2007년 제작된 <꽃보다 남자 리턴즈>는 그해 전체 드라마 시청률 2위에 등극하는 등 신드롬을 일으켰다. 마침내 2008년 <꽃보다 남자 파이널>이 영화로 만들어지며 전체 이야기의 막을 내렸다. 영화는 완성도와 관계없이 그저 <꽃보다 남자> 주인공들이 재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이 들썩거렸다.
한국 vs 일본 vs 대만의 <꽃보다 남자>
한국에서도 이 만화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몇 번 흘러나왔다. 이전에도 만화를 원작으로 드라마가 제작된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1994년 이현세의 <폴리스> 이후 허영만의 <아스팔트 사나이> <미스터Q>, 방학기의 <다모>, 원수연의 <풀하우스>, 박소희의 <궁>, 허영만의 <식객> <타짜>가 인기리에 방송되었다. 현재도 김진의 <바람의 나라>가 방송 중이며 <공포의 외인구단>(허영만) <탐나는도다>(정혜나)가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1월, <꽃보다 남자> 한국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F4 역할을 과연 누가 맡을지 하는 것이었다. 대만, 일본의 F4 멤버는 전원이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여성의 로망을 만족시킬 만한 키와 외모, 분위기를 겸비해야 하기에 아이돌스타부터 기성 및 신인배우를 망라하여 수많은 후보가 오디션을 거쳤다. 결국 경쟁자들을 물리친 행운의 주인공으로 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이 선발되었다.
이민호는 F4의 리더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신화그룹의 후계자 구준표 역을 맡았다.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 <아이 엠 샘>,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1-1> <울학교 이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기대주로, 만화 원작과 비슷한 이미지를 위해 머리 스타일도 바꾸었다. 대만의 ‘따오밍스’(언승욱)는 근육질에 남성적인 거친 면모를 내세운 데 반해 일본의 ‘츠카사’(마쓰모토 준)는 어눌하면서도 좀 더 슬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민호는 185cm의 늘씬한 키에 순정만화스러운 분위기가 강점이다.
원작의 ‘루이’ 윤지후 역은 F4 중에서도 대표 꽃미남이다. 네티즌은 이 역에 일찍부터 김현중을 점찍어놓았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보였던 엉뚱하고 나른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이 루이와 겹치기 때문이다. 외아들로서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어두운 구석이 있으면서도 여주인공이 힘들 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그의 캐릭터는 모든 여성이 꿈꾸는 남성상이다. 대만과 일본에서 이 역할을 맡은 주유민, 오구리 은 F4의 리더를 맡은 언승욱, 마쓰모토 준 못지 않은 지지와 인기를 얻었다. 김현중이 그 인기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국보급 도예가 집안의 후계자인 소이정을 연기할 김범은 이미 <거침없이 하이킥> <에덴의 동쪽>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가문을 등진 형의 인생을 훔쳐 살고 있다는 자책감과 첫사랑의 깊은 상처를 지닌 플레이보이다. 김범은 이번 역할을 계기로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김준이 맡은 송우빈은 F4 멤버가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감싸주고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 역할이다. 역시 플레이보이 기질은 다분하지만 ‘동시다발적’인 연애는 하지 않는 나름 순정파다. 보이밴드 ‘티맥스’ 멤버 출신의 김준은 연기자로서 첫 번째 도전이다.
이 꽃미남들의 사랑을 받을 여주인공에는 구혜선이 낙점되었다. 씩씩하고 정직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서툰 평범한 여학생(구혜선의 미모는 평범하지 않지만) 금잔디는 이름만큼이나 잡초 같은 생명력을 지녔다. 대만판의 ‘산차이’(서희원)가 언어적 특성상 ‘따오밍스’와 싸울 때 격렬하고 도전적이었다면 일본판에서 ‘츠쿠시’(이노우에 마오)는 조곤조곤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탁소 집 딸 금잔디는 과연 어떤 매력으로 네 남자를 사로잡을지 주목된다.
대만의 <유성화원>은 28부작 안에 원작을 충실히 담았으나 방송 당시까지 만화가 완결되지 않았기에 결말은 다소 달랐다. 대만인의 정서와 맞추기 위해 등장인물을 고등학생이 아닌 대학생으로 설정한 점도 눈에 띈다. 이에 비해 일본판은 9부작으로 압축하느라 내용이 많이 짧아졌다. 나중에 제작된 만큼 소품으로 등장한 삐삐가 핸드폰으로 바뀌는 등 시대변화를 적절히 반영해서 드라마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꽃보다 남자>는 만화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흥행 불패신화를 이어왔다. 이번 한국판은 인기가 검증된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너무 익숙한 이야기’라는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이미 두 나라에서 두 번씩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신선하게 요리할 것인지가 흥행 포인트다.
뻔하지만 괜찮아
재벌 남자와 평범한 집안의 여자, 안하무인인 남자와 당차고 정의로운 여자, 집안의 반대. 물론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결말을 몰라서 보는 게 아니다. 우리는 현진헌 왕자가 과거 여자친구의 일은 추억으로 남긴 채 평범한 삼순이를 사랑할 줄 알았다(<내 이름은 김삼순>). 아시아 최고의 스타이자 ‘왕싸가지’ 이영재가 작가 지망생 한지은에게 청혼할 것을 첫 장면부터 알아챘다(<풀하우스>). 물론 가난한 유학생 태영이 파리에서 겪었던 모든 일이 꿈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다(<파리의 연인>).
<꽃보다 남자>에 대해서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분명히 남주인공 준표는 여주인공 잔디 앞에서 무례하게 말하고 행동하다 한방 얻어맞을 것이다. 준표는 잔디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고는 질투에 사로잡힐 것이다. 잔디에게 향하는 마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혹은 들킬까봐 괜히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 것이다. 아마도 비 오는 날, 온 세상의 우산을 다 사들일 수 있는 재력이 있음에도 굳이 비를 맞으면서 잔디를 기다릴 것이다.
결말을 알면서도 우리는 본다. 중요한 건 ‘과정’이기 때문이다. F4 멤버 한 명 한 명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나갈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완벽해보여도 자기만의 아픔과 결함을 지닌 F4와 주체적인 ‘캔디’ 잔디가 서로를 만나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설득력 있게 그려준다면 한국판 <꽃보다 남자>도 대만과 일본판의 성공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부유층의 호화로운 생활, 몇 명의 남성에게 동시다발적인 애정공세를 받는 여성 이야기는 물론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실제 삶에서 우리는 지갑을 한 번 열 때마다 망설여야 하며, 한 남자에게 고백 받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왕자에게 사랑받는 여주인공이라는 판타지는 팍팍한 우리 삶의 영원한 흥밋거리 아닌가. 몇 년 전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재벌가의 혼맥(婚脈) 지도’를 보면 이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보다 낮다. 사실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는 재벌가의 사람은 현실 생활에서 만나기조차 어렵다. 혹 만난다면 금잔디처럼 일단 주먹을 한방 날리겠다고? 아서라, 잘못하면 ‘회장님’ 주변에 있는 ‘어깨들’과 엮일 수도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따라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