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남는 건 결국 회장님의 여성편력과 사각관계뿐
Posted 2009/08/17 12:04<스타일>을 이끌어가는 건 결국 두 가지였습니다. 타인의 호의를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하는 도끼병 걸린 두 여자와 돈 많고 나이든 '회장님'의 여성편력. 참, 여기에 사각관계를 포함시켜야겠군요.
이 드라마는 전문직 드라마임을 표방하면서도 잡지사라는 곳을 아주 하찮은 곳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평생 잡지나 패션엔 전혀 관심도 없던 이를 발행인으로 앉힌다는 말인데, 이것 참!
하다못해 요즘은 재벌3세도 사원-대리-부장 등의 자리는 거칩니다. 물론 그 뒤에 초고속 승진을 하여 삼십대 초중반에 상무니 전무니 이런 직급을 맡았다가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지만요.
저도 잡지사에 있어봤지만(<스타일>에 나오는 잡지와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발행인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취재하고 글쓰는 이들을 얼마나 잘 이해해주느냐, 잡지업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가, 실무에 파묻힌 기자가 못 보는 것을 얼마나 잘 짚어내느냐, 이런 것은 매우 중요하죠.
겉으로는 방목하는 듯 보이지만 방향을 설정하고 전체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제가 다닌 잡지사의 발행인께서 하셨던 역할이고, 저는 그분에게서 '선배'에겐 배우기 힘든 또 다른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물론 운이 좋아서 이렇게 좋은 발행인을 만난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적어도 전문직 드라마라는 타이틀은 포기해야겠군요. 그저 혈통주의에 이끌려 낙하산을 타는 젊은이의 얘기일 뿐이에요.
또 하나. 도끼병 걸린 두 여자 말이에요. 왜 여자를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할까요? 수영장에서 구해줬다고 관심 있는 줄 알다니. 그럼 물에 빠진 사람을 모른 척해야 하나요. 이서정(이지아)과 박기자(김혜수)가 구두 하나로 참 오랫동안 감정 싸움을 하더군요.
그러다 갑자기 서우진(류시원)과 박기자의 관계가 진전되었던데, 제가 촌스러운 건지 그들이 왜 저렇게 발전했는지를 당최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서로 비꼬기만 하던 이들이 왜 갑자기 연인 비슷하게 되었는지 말이죠.
보통 사이 안 좋은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면 '아, 둘이 맺어지겠군' 하는 것쯤은 누구나 예상합니다. 중요한 건 과정이죠. 둘이 정 들고 상대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한 뒤에야 호감을 갖는 것이 정석이죠.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도대체 언제 어떻게 감정이 싹텄는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게다가 무슨 비싼 가방을 두고 베스트드레서 경쟁을 하는 이서정과 박기자라니. 여자는 그렇게 하찮은 존재가 아니란 말입니다. 옷 잘 입는 것, 좋은 가방, 물론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일로, 실력으로 경쟁하고 싶다고요.
이서정은 도대체 왜 그렇게 일은 안 하고 실수만 하는지, 게다가 실수했을 때 그걸 만회하려는 노력조차 안 하고 그저 변명만 늘어놓는지, 이 드라마는 잡지도 여성도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어서 답답합니다.
결국 <스타일>은 출생의 비밀과 유산 문제, 사각관계, 남자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 인생을 꽃 피우는 캔디로 이루어진 진부한 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