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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재방송은 단순히 ‘닥본사’를 한 탓에 내용을 모두 알아서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기 싫은 수준이다. 주말이면 케이블 채널에서 연속방송으로 <꽃남>을 틀어대고 주중에도 어렵지 않게 <꽃남> 재방송을 접할 수 있다. 1회부터 한 회도 빼놓지 않고 <꽃남>을 열심히 시청한 나로선 채널을 돌리다 <꽃남>을 마주쳤을 때 반가운 마음에 얼마간 머무를 수도 있건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채널을 돌리고 만다. 난 분명 <꽃남> 팬인데 왜 재방송이 보기 싫을까?

드라마 팬의 시청 행태의 기본은 ‘닥본사’와 ‘보고 또 보고’다. <꽃남>을 ‘닥본사’는 하되 ‘보고 또 보고’를 하지 않는 것은 비슷한 맥락의 다른 드라마와의 차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노희경, 인정옥, 김지우 작가의 작품처럼 특유의 작품성으로 이미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 드라마 말고 대중적 인기를 노린 듯 했으나 의도치 않게 ‘광팬’들을 만들어낸 드라마들 말이다.

처음 <꽃남>이 방영되었을 때 <궁>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만화를 원작으로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도 그랬고 제작사도 같다. 여주인공에게 어린 남동생이 있는 설정과 여주인공의 엄마 역을 임예진씨가 맡았다는 점까지 같다. <궁> 또한 <꽃남>처럼 알려지지 않은 신인을 남주인공으로 발탁했고 캐스팅을 두고 이러저러한 말이 많았다(당시 채경 역으로 네티즌들이 강추했던 배우가 구혜선이었다는 것도 <궁>과 <꽃남>의 묘한 연결고리처럼 느껴졌다).

<궁>은 10대 시청자를 겨냥한 가벼운 드라마로 여겨졌으나 결과적으로 20, 30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20, 30대 ‘언니’들은 ‘우리 으네’를 격하게 사랑하며 드라마 시작 전 윤은혜에게 가졌던 편견에 대해 사과하기까지 했다. 극 중 채경의 처지에 공감했고 채경의 사랑을 응원했다. 이 언니들의 사랑으로 팬들의 리뷰 등을 모은 책이 2권이나 나왔다.

팬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한 것의 시초는 <다모>다. <거짓말> <네 멋대로 해라> 등 이전에도 마니아 드라마는 있었으나 ‘다모폐인’들은 새로운 드라마 마니아 문화를 만들었다. 지금이야 인기 드라마를 소재로 한 패러디물이 차고 넘치지만 다모폐인들이 게시판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 신문을 만들고 외전을 만들어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 현상이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과 <커피프린스 1호점>도 수많은 연애드라마 중 하나에 머물지 않고 드라마 역사에 확실한 한 점을 찍었다.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팬들이 단순히 제작진이 만들어서 보여주는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물과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인물이 마치 실존인물인 양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로 그 인물의 역사와 성격을 구축한다. 그럼으로써 드라마에서 표현되지 않은 여백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궁>에서 채경이 신을 사랑하면서도 왜 궁을 떠나려고 하는지, <다모>에서 천한 신분의 채옥에게 종사관 황보윤과 화적패 장성백을 향한 사랑의 의미는 어떻게 다른지, <발리에서 생긴 일>의 수정이 계급적 한계와 세속적인 욕망 사이에서 어떻게 갈등하는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은찬이 왜 좀 더 빨리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지는 팬들의 해석으로 더 확실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다모>의 연출자인 이재규 PD는 드라마 종영 직후 “다모폐인들이 아니었으면 <다모>의 가치가 이렇게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모>는 제작진의 손을 떠났다. 다모폐인들에 의해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팬들에 의해 드라마의 외연이 넓어졌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드라마 자체가 일관성 있게 구축된 세계여야 한다. 인물과 사건이 개연성을 가지고 설득력이 있어야 팬들의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래야만 드라마에서 미처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그 여백을 팬들의 해석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들과 <꽃남>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꽃남>의 인물들은 이리저리 갈팡질팡 흔들리고, 사건들은 아무런 맥락 없이 툭툭 나열된다. 구준표가 마카오에서 갑자기 냉정해진 건 70만 신화인의 삶을 어깨에 짊어졌기 때문이라 쳐도, F4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을 만큼 바빴던 구준표가 한국에 다시 돌아와 유유자적하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신화그룹 후계자로서 자신을 옭아맨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는 구준표와 잔디 앞에서 여전히 철없이 행동하는 구준표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가장 심각한 것은 잔디의 캐릭터가 실종된 것이다. 드라마 초반의 당차고 씩씩했던 잔디가 없어진 것은 오래다. 지금의 잔디는 준표와 지후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 잔디가 준표에 대해 그리고 지후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혹은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는 장면마다 설명이 달라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여주인공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다(공교롭게도 주인공이 모두 하지원과 윤은혜였는데 이들이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드라마들 때문이다). 이들 또한 잔디처럼 두 남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했지만 각각의 상황이 설득력이 있었다. 적어도 그 관계의 중심에 설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자기 세계를 온전히 가지고 있었으며 극 중 마음은 오락가락해도 캐릭터 자체가 오락가락하지는 않았다.

드라마를 ‘보고 또 보고’ 하고 싶은 건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거나 드라마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다. 팬들이 개입하고 싶을 만큼 완성된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 <꽃남>은 결국 높은 시청률은 얻었지만 ‘폐인’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F4의 미모를 감상하고(그것은 물론 훌륭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본방을 한번 보는 걸로 족하다. 재방송까지 본다면 <꽃남> 팬이라는 게 더더욱 부끄러워질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닥본사’나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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