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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생방송 때문이라고? 그래, 이해한다

인기도 많고 말도 많고 사고도 많은 <꽃보다 남자>, 국내의 인기는 물론이고 국외 수출까지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및 스태프들에게 사고가 끊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 '생방송'스러운 제작환경 때문에 제작진이 처음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할 때 가졌을 포부는 마음속 깊이 '간직'만 한 채로 어떻게든 방송을 제시간을 내보내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시청자가 드라마 제작환경까지 이해해 가며 드라마를 보는 사태가 발생하는 중입니다. 뭐, 이전에도 워낙 '생방송' 드라마가 많아서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상황이긴 합니다. 왜 잔디가 지후를 짝사랑하다가 준표에게로 마음이 돌아섰는지 드라마 안에서는 개연성이 떨어져도 이미 잘 단련된 시청자들은 '그럴 만했겠지, 뭐.' '워낙 쪽대본을 갖고 찍는다잖아. 배우들이 대사를 외운 것만도 기특해.' 하면서 이해해 줍니다(물론 F4가 이렇게 출중한 외모와 매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이해되지 않았을지도..).

바야흐로 드라마는 F4가 고등학생이었던 시기를 지나 구준표의 약혼자가 등장한 뒤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습니다(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약혼'이라는 걸 하는 사람을 아직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0.0000000000001%는 약혼을 많이 하는지, 재벌2, 3세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는 웬만하면 약혼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 것도 신기합니다. <파리의 연인> 한기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꽃보다 남자>, 후반부로 오고 보니 기 막힌 반전이 숨어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대만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들어지다 보니 반전이 없으면 심심해질까 봐 그랬던 것일까요? 반전의 주인공은 바로바로바로!! 윤지후와 하재경입니다.

지후의 반전: 듬직하고 멋진 진짜 남자로 성장한 윤지후


초반엔 무작정 흰색 옷만 주야장천 입고 나와 찬란한 빛을 받으며 바이올린을 켜던 윤지후, 그가 후반으로 오면서 연기와는 관계 없이 캐릭터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지후를 맡은 김현중의 연기 실력과는 정말 별개입니다.

드라마 전반부에서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모은 주인공 구준표가 '2부'를 시작하면서 뒤늦은 사춘기라도 왔는지 갈길을 잃고 헤매는 사이, 지후가 매너까지 좋은 진짜 왕자님으로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머리를 자르고 나타난 김현중의 외모는 굳이 뒤에 찬란한 빛이 없어도 샤방샤방한 빛을 자체 발산하더군요.)

이전에는 만화책 속의 그림보다 더 생동감이 없던 지후의 캐릭터가, 잔디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기 시작하면서는 정말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왕자님처럼 느껴집니다. 준표가 잔디를 만나 성장하고 변해 간다기보다는, 오히려 지후야말로 잔디를 만난 후 자신의 비좁은 세계를 넓혀 가고 더 따뜻한 사람으로 변해 가지 않았던가요?

이런 성장하는 모습이 기존의 비주얼적인 매력과 어우러지면서 듬직하고 멋진 남자로 지후를 바꿔 놓았습니다. 15화에서 "업힐래? 안길래?" 하고 잔디에게 물을 때는 이거야 뭐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차무혁이 송은채에게 "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 밥 먹을래! 나랑 살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 하는 포스는 아니어도, 제법 잔디에게(또는 뭇 여성에게) 상당히 와 닿을 만한 포스는 발휘하고 있다 이겁니다.

재경의 반전: 진짜 '잔디' 등장이오~!


하재경은 또 어떻습니까?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심지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더더욱 짧은데도) 진정한 '잔디스러운' 매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원래는 여주인공인 금잔디가 발휘했어야 할 매력, 즉 씩씩하고 당당하고 기 안 죽고 자연스럽고 생기 있는 매력을 재경이가 다 발산하고 있는 거지요. 실제 금잔디는 바보 같고 수동적이고 어색하고 망설이기만 할 때 말이에요.

17화에서도 재경은 준표가 삐딱하고 뚱하고 제멋대로만 행동할 때에도 전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굴하지도 주눅들지도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밀고 나갑니다. 완전 준표의 머리 위에 앉은 듯 쿨한 모습은 여주인공 잔디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과 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잔디가 씩씩하고 당찬 여주인공이었던 시절은 오직 왕따 당했던 그 옛날과 음식을 앞에 두고 먹을 때뿐입니다. 누구나 기가 껌뻑 죽는 네 남자 앞에서도 잡초처럼 당당해야 하는데 지금 잔디는 오직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을 뿐이라, 누군가 기댈 사람이 필요할 만큼 나약해져 있지요.

메인 남녀 주인공의 각자 다른 로맨스가 더 두근대네

대한민국 국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화그룹의 고객이 된다는데, 이 회사가 그토록 어려워져서 재경네 회사의 도움만 애절하게 기다려야 한다니 이것 참 큰일입니다. 하지만 자기 회사에 대한 애정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던 안하무인 독불장군 준표가 아버지 때문이든 엄마의 강권 때문이든 재경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 이게 가능한지는 논외로 두겠습니다. 그것까지는 시청자가 이해한다고 해 보죠.

그런데 둘이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보면 과거 언젠가 (사실 시청자에겐 며칠 전의 일이지만) 잔디와 준표가 사랑하는 사이였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만듭니다. 안하무인 독불장군 준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혹은 잘 맞는) 여자는 잔디가 아니라, 씩씩하고 솔직하고 당당한 재경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지후와 잔디의 모습을 보면, 또 이들도 왜 둘이 연결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잡초처럼 꿋꿋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생명력은커녕 너무 여리고 잘 울고 쉽게 마음 약해지고 솔직하지도 못한 잔디인데, 항상 어려울 때면 그림자처럼 나타나 위로해 주고 눈물을 닦아 주고 지켜 주고 모든 어려움을 함께해 온 지후와 맺어지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나요?

준표와 잔디가 헤어질 때 시청자가 가슴 아파하고 어서 다시 만났으면, 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와는 정반대로 메인 남녀 주인공의 각자 다른 로맨스가 더 두근대고 재미있고 설득력도 있으니, <꽃보다 남자>야말로 반전 드라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예는 있었지요. 좀 오래된 드라마긴 해도 많은 분이 기억하시는 <별은 내 가슴에> 말입니다. 원래 차인표와 최진실이 연결되는 설정으로 출발했으나 안재욱의 역할과 연기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스토리가 전면 수정되었지요. 주조연급의 캐릭터가 더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성 스캔들>에서는 선우 완, 나여경 캐릭터는 강지환, 한지민이라는 좋은 배우를 만나 초반에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나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이들 커플 이야기는 '안드로메다'로 가고 오히려 서브 남녀 주인공인 이수현과 차송주 캐릭터가 더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원작이 있기에 결말도 거의 정해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빤히 보이는 결말인데, 그 결말로 가는 과정마저 가져다붙이는 모양새가 되지 않을지. 준표는 사춘기를 끝내고 매력적인 남주인공으로 돌아와 주길, 잔디도 분발하여 후반부에라도 통통 튀고 생기 있는 매력을 보여 주길 기대해 봅니다. 최소한 지후와 재경만큼의 호감과 설득력을 지니길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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